한국판 뉴딜정책’의 성공 조건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경제 위기에 재정 투입 불가피
과거 미국·일본은 재정만 낭비
꼭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하고
경제 체질 함께 개선해야 효과
불의의 재난으로 생계가 위태로워진 취약계층을 구제하고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기업을 지원해 시스템 붕괴를 막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의 재정투입과 금융지원의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경제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지금처럼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살포하고, 비효율적인 공공사업을 벌이고, 허드렛일을 만드는데 재정을 낭비하면 위기의 골은 깊어지고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케인스 정책 효과 본 적 없어
그래픽=최종윤
경제위기 때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케인스 정책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재정지출이 유효수요를 창출하고 생산을 늘려 국민소득 증대에 기여한다는 케인스 이론은 역사적으로 작동한 적이 없다.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미국 정부는 엄청난 공공사업을 벌였다.
워싱턴 공공건물에서는 새떼 쫓아내기에 인력을 고용했고, 바람에 날아다니는 풀 더미 줍는 데도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필요재원은 국민 세금을 인상해서 조달했다. 생산적인 곳에서 세금을 걷어 비생산적인 곳으로 자원을 옮기는 일이 반복되면서 대공황은 12년이나 지속했다.
일본의 장기 저성장도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케인스 학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일본이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어 통화정책만으로 경기를 살릴 수 없다고 진단하고 재정지출을 대폭 확대할 것을 일본 정부에 권고했다. 일본 정부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산골에 도로를 건설하고 국민에게 상품권을 공짜로 나눠줬다. 재정이 투입될 때마다 경기가 반짝 살아나다 다시 가라앉는 일이 반복되면서 국가채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저성장은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케인스 방식의 사고에는 기회비용에 대한 개념이 없다. 재정은 하늘에서 떨어진 공짜 돈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을 수반하고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눈에 띄는 이득에만 집착하면 전쟁과 같은 파괴도 축복으로 여기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현재에 집착한 근시안적 사고에 매몰되면 ‘소비는 미덕이고 저축은 악덕’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만연하게 된다. 저축은 기업이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게 하는 자원의 창고이고 미래 소비의 원천이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이 빚을 더 내서 소비하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GDP대비 국가채무 비중과 성장률
정치논리가 지배하는 국가일수록 재정이 적정 규모를 초과하는 경향이 높다. 지난 40년간(1980~2019년 평균)의 GDP 대비 재정지출 비중과 국민소득의 관계를 살펴보면 성공적으로 재정을 집행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스위스는 GDP 대비 재정지출 비중이 30% 수준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를 넘어 성공한 국가로 꼽히고 있다. 반면 그리스·이탈리아·포르투갈·스페인 등은 GDP의 40~50%에 달하는 재정을 쓰고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내외에 머물고 있다.
과도한 재정은 저성장 초래
재정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국가는 국가채무 비중이 필요 이상으로 높고 저성장은 일상화되어 있다. 코로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발행할 적자 국채규모가 90조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기연장까지 포함하면 국채발행 규모가 160조원이 넘는다. 시장을 교란하기에 충분한 규모다. 국채발행이 늘어나면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민간의 투자가 감소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국가채무는 세 부담이 증가할 거라는 신호로 작용하기 때문에 예비적 동기의 저축이 늘고 소비는 줄어들게 된다. 우리나라의 국채는 경제위기 때마다 매도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국채 발행비용이 많이 들어 구축 효과도 크다. 국채 발행을 통해 미래의 재원을 언제까지 끌어다 쓸 수만은 없다. 언젠가는 세금을 올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법인세·재산세 등 비효율적인 세수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미래에 치러야 할 비용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정부지원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집중돼야 한다. 그동안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제도 개혁을 통해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한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은 교도소의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투자가 증가하고, 기업가 정신이 발현되고, 일자리가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코로나 경제위기 이후의 한국 경제는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프레데릭 바스티아
우화는 빵집 아들이 부주의한 돌팔매질로 아버지 가게의 유리창을 깨면서 시작된다. 아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주인을 보며 동네 사람들은 유리창이 깨진 게 우리 동네에 나쁜 일이 아니라며 위로를 한다. 빵집 주인이 유리창을 새로 사면, 유리창 가게의 일거리가 늘어나고, 이렇게 번 돈으로 구두를 사고 책도 사면 모두의 소득이 증가한다며 입을 모아 주인을 위로했다.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으면 빵집 주인은 새 옷을 살 예정이었다. 새 옷을 샀으면 재봉사의 일거리가 늘어나고 유사한 파급경로를 거쳐 소득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은 동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유리창이 깨지면서 새로운 부(富)가 창출된 게 아니라 재봉사에서 유리장수로 부의 이전만 일어난 것이다. 결국 새 옷을 장만하려고 모아둔 돈을 잃은 빵집 주인만 손해를 보고 말았다.
바스티아의 우화가 주는 교훈은 명쾌하다. 기회비용을 보지 못하면 어디에 지출했는가에 상관없이 지출이라는 행위가 번영을 가져올 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전쟁과 같은 파괴적 행위마저도 경제에 이롭다고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학자는 단기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간접적인 효과와 특정 그룹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까지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